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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강사/오늘 학원에서 있었던 일

오늘은 인생에 있어 중대한 선택을 하기로 한 날이다

나는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이번 학원으로 옮길 때도 공부방을 열어볼까, 했지만 경력도 적고 처음 세 달 이상을 '버티기'로 연명해야 할 수도 있고 그 기간이 무한정 길어질 수도 있다는 소릴 들어서 겁을 먹었었다. 그래서 '그래, 남 밑에서 일해도 안정되게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게 짱이지.' 하고 이번 학원으로 옮겨 왔다. 전 직장에서 올려준다는 월급만큼 받지 않고 이직을 하는 상황이었지만(그 이상 받고 옮기는게 일반적.)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월급이 인상되는 것도 내 능력을 보여준다면 얼마든지 당겨질 수 있으니 최대한 열심히 해서 받을 수 있었던 그 월급을 최대한 빨리 받아보자는 마음을 먹고.


그렇게 열심히, 열심히, 하루, 이틀.. 지난 9개월 동안 일을 하니 출퇴근의 개념 없이 노트북과 교재는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고 수업과 운영에대한 생각을 쉬지 않고 했다. 처음에는 월급을올리자! 가 주 동기부여 였지만 내가 가르치는 '나의 아이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자연스레 열심히 하게 되었다. 이 부분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면 많이 공감을 할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씩 신경을 쓰다 보니 이것저것 더 챙기게 되었고 몸은 더 피곤해졌지만 그 만큼 새 아이들이 들어와서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수업을 시작했던 시기에 비해 내가 맡은 아이들은 두 배 이상이 되었다. 그중 상당수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의 소개로 온 아이들이었고, 그 아이들의 소개로 또 다른 친구가 오기도 했다. 그런 모습에 참 뿌듯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뿌듯함에서 멈췄다. 내가 셀프로 동기를 부여해서 열심히 일할 뿐, 학원 차원에서 동기가 부여되는 부분이 아무것도 없었다. 능력을 보여 주면 된다고 했을 때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건 느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련히 전문가이니까 알아서 해 주겠거니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오는건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스트레스 뿐. 무엇을 위해 내가 이렇게까지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밴드'라는 어플로 학부모와 소통을 하는 시스템을 시도해보다가 학부모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학원 전체 시스템에 도입을 하게 되었어도 그 부분에 대해서 돌아오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돌아온다는게 무조건 돈만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말 한 마디라도 이게 참 도움이 되었다, 라는 투의 고맙다는 뉘앙스의 말이 있었어도 그나마 나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받은 만큼 일을 하라는 말은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 그 이상으로 일을 하게 되면 일 잘 한다는 말은 듣겠지만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일이 떨어지게 되고 결국 나만 피곤해지게 된다. 둘째, 내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일 하는만큼 챙겨주는 사장은 세상에 흔치 않다. 그러니 주는 만큼 일을 하고 몸 상하지 않는게 더 이익이다 라는.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았다.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을 하게 되면 받은 만큼 일을 하기는 커녕 얼마를 받는지도 까먹고 일에 몰두하게 될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일을 해야 나도 크게 성장을 하고 좋은 경험을 쌓는 과정이 될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일을 하는 것도 사람을 봐 가면서 해야 한다는 것을 오늘 깨달았다.  


여태 직시하고싶지 않아서 회피하며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오늘 내가 마침내 결론을 내린 생각은 이렇다. 나와 같이 일하는 boss는 그게 사장이던 원장이던 의사던 누구던 간에, 그렇게 묵묵히 남의 일을 나의 일처럼 해 주었을 때 나에게 그만큼 돌아올지 돌아오지 않을지는 지금 상황을 봐도 알 수가 있다는 것. 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업의 상황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바뀔 수 있겠지만 그 오너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상황이 힘들어도 직원의 입장을 이해하고 뭐라도 하나 더 해주려는 사장이 있다면 어느 직원이 그 상황을 외면할까. 반대로 같은 상황이더라도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더 노력해달라고 하며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손해보지 않으려는 포지션을 유지하는 사장이 있다면 직원의 입장에선 어떨까. 여기서 나는 후자의 상황에 있다고 결론내렸다.


그리고 이어서 내린 결론은, 그렇게 헤아려주는 보스는 정말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내가 보스가 되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 조차도 나와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을 헤아리지 못할까봐 누군가와 함께 일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고 손이 부족하다보면 누군가를 필요로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내가 겪었던 고충을 잘 녹여내서 내가 겪었던 불편함이나 부당함은 겪지 않게 하고 싶다. 내가 겪어보니 딱히 살면서 겪어 보지 않아도 될 것들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나 스스로 일어서려면 당장 떠오르는 '어디서 시작하지?'라는 가장 기본적인 A부터 Z까지 정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닐 테지만 그게 무섭고 두렵고 귀찮아서 미루다보면 난 그저 좋은 학원을 찾아 돌아다니는 유목민을 자처하다 이도 저도 안 되어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결심을 내린 지금도 앞으로 펼쳐질 불확실성에 약간 긴장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최악이어봤자 죽기 밖에 더 하겠나. 그리고 생각해보니 잘 될거라는 믿음은 이미 아이들이 계속 주고 있다. 가르치는 아이들의 실력이 늘고, 영어를 읽을 수 있게 되고, 내신 성적이 오르고, 함께 공부하는 친구가 점점 늘어나는 것. 아이들이 먼저 나를 믿고 따라와 줬던 것 처럼 나도 나를 믿고 쭉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