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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강사/오늘 학원에서 있었던 일

n년동안 가르쳤던 학생들의 대학 입학 후 처음 만난 날

작년에는 학원에서 일을 하며 과외를 겸했었다. 이전에 일했던 학원에서 고1까지 가르치던 학생이 내가 학원을 옮기면서 중간에 과외로 변경하게 되었고, 고3이 된 이후까지 쭉 과외를 했었는데 2학년 하반기부턴 친구와 같이 그룹과외를 하게 된 것이다.

학원에서 일을 하는건 월~목 오후11시 혹은 12시까지 였기 때문에 과외를 할 수 있는건 금요일~주말뿐이었다. 고2까지는 1:1 과외였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고3으로 레벨이 뛰면서 그룹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내가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이 들어가게 되었다. 학원에서도 고3을 맡기 때문에 학원 학생들과 진도를 똑같이 나가면 되었겠다 생각이 들겠지만, 서로 레벨이 다를 뿐더러 학원 학생들은 온전히 정시파였고 내 과외 학생들은 여름방학때 까지는 수시, 그 이후로는 정시를 준비하게 되었으니 전혀 다른 코스를 밟아야 했다. 

평일에 쌓인 피로도와 스트레스를 주말에 푸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주말에 다음 주 오프라인 수업을 준비함과 동시에 유튜브 촬영이나 편집을 하기도 했으니 일이 계속 쌓이기만 했다. 어떤 사람들은 '주말에 고작 2시간 일하는건데 그게 뭐가 대수야!' 라고 하겠지만 고3의 수업은 그런것이 아니다. 선생님에게는 고3이라는 학년은 누구나 부담으로 다가오는 학년이다. 실제 수업을 진행하는건 2시간이지만 그걸 준비하는 시간과, 결과가 좋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어디 놀러가지도 못하고 아쉽겠다 라고 하는 것은 딱히 와 닿지가 않는다. 어차피 집 밖으로 안 나가서..

무튼 그렇게 나의 주말을 반납해가며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학생들의 내신과 정시를 준비해주었다. 한 명은 1년 반 정도, 한 명은 거의 4년 가까이 봐온 후에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 것이다. 두 학생 모두 조금 늦게 정신을 차린 케이스라, 너희 그러다가 태백산맥 넘어서 시외버스 타고다니며 대학 다녀야 한다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 일년 내내 노래를 부르며 가르치다보니 다행히 춘천에 소재한 4년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둘 다 단번에 붙은 것은 아니고 예비가 떴었는데 합격 소식을 하나 하나 전해오자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난 교육비를 받아서 그에 해당하는 수업을 했고 그것으로 내 할일은 끝낸 터인데 왜 그렇게 그들의 합격소식에 신경이 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중에 밥 한 번 먹자 했는데 학원에서는 연이어 매주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기도 하고 확진자가 계속해서 늘고 있어서 다음 주에, 다음 주에 하고 생각하다보니 결국 3월이 되어서야 만났다. 

남학생들은 참 단순하다. 그저 매일 입던 옷 똑같이, 한 명은 한 겨울에도 덥다고 반팔을 입고 다니더니 여전히 덥다며 겉옷을 훌렁 벗고 반팔을 흔들어제끼질 않나 한명은 그대로 아디다스 검은색 츄리닝을 입고 나타났다. 우리는 닭갈비를 먹으러 갔다. 가장 화두가 되었던 이야기거리는 수강신청. 본인들이 직접 짠 첫 시간표였다. 한 놈은 워낙 철두철미 하더니 깔끔하게 1교시를 제끼고 10시부터 4시까지 알차게 수업을 집어넣음과 동시에 금공강을 완성했고, 한 놈은 수강신청 망했다기에 보니 월수금이 1교시부터고 금요일엔 6시까지 수업을ㅋㅋ 듣는다며 마른세수. 교수님들이 어쩌고 대면 비대면 강의가 어쩌고 하는걸 보니 다 컸다 싶었다.

그 둘이 틱틱거리며 그렇게 얘기하는걸 듣고있자니 감개무량했다. 고1때까지도 주어 동사도 못찾아서 a4용지에 빨간선 죽죽 그여가며 아장아장 분석을 시작하더니 언제 시간이 흘러서 이렇게 영문과를 진학했나. 그렇게 4년 가까이 가르친 학생은 나의 영향을 받아서 영어에 흥미가 생겼다며 모든 수시과를 영어 관련과로 집어넣더니 영문과에 진학했는데 음성학이 어렵다는 둥 발음기호가 왜이렇게 어렵냐는 둥 한탄을 했다. 너 재수하면서 공부가 안된다 어쩐다 그렇게 말 안 하는게 어디냐고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 그랬더니 그건 맞죠.. 하면서 또 수긍하는걸 보니 재밌다.  

배불러 죽겠다고 절대 못먹는다고 하더니 프라푸치노 시켜서 20분만에 원샷

이제 일을 시작한지 7년차가 다 되어가고 한 곳에서 오래 있다보니 이렇게 n년을 같이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도 보게 되었다. 이럴 때는 내 직업에 대해서 다시 또 혼란스러워진다. 가끔 갑작스럽게 학원을 쉬게 되었다며 사라지는 학생들이 있을 때나 상식선에서 이해되지 않는 학부모들의 컴플레인 등으로부터 받는 충격에서 나를 보호하려면 그저 이건 내 직업일 뿐, 하고 나와 분리를 시키면 타격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곤 했기 때문이다. 걔가 학원을 그만 두는 것? 응 내 알바 아니야. 선생님이 아주 엄한 스타일이 아니라서 애가 공부를 안 하는 것? 응 호랑이 센세 구하러 가세요.

하지만 오늘 내가 보낸 하루를 보면 나의 일은 단순 직업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꽤 의미있는 영향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런 의미에서 모든 학생들에게 하나씩 정을 주다보면 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충격을 받게 되니 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충격을 받는 일이 없이 평온한 날이 계속되다보면 이 사실을 잊고 또 정을 주고 있는걸 발견하고 적정선을 찾아 유지하려고 한다. 지금 고1에는 중2부터 쭉 공부해온 학생들이 많다. 아마 오늘 만난 학생들처럼 대학교 입학 후 같이 밥을 먹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중간에 나에게 충격을 주는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 난 적정선을 유지해야한다. 딜레마같은 상황이 계속된다. 그래서 어떨 때는 이렇게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도 내 수업만 제공하는 형태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결국 어떤 일을 하던지 관계라는건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학생들과의 관계를 스스로 조절하는 수 밖에 없다.